October 18, 2022 . 최고관리자 고통이 찾아 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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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변은광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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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 창 33:18-20 |
설교날짜 | 2022-10-16 |
고통이 찾아 올 때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으며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창 33:18-20
들아가는말: 고통이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잘 되는 떄인데 불안할 때가 있다. 잘되고 있는데 불안해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큰 일이 아닌데 큰 일이 일어날까봐 염려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왜 형통의 때에도 불안해 하는가?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욥 3:25
전쟁에서 많이 사용하는 것 중에 하나가 지뢰다. 차량이 가는 길에, 사람이 지나가는 길에 지뢰를 매설해 놓으면 그 지뢰로 인한 피해는 상당하다. 아직 한국에는 지뢰 지대가 남아 있고 해체되지 않은 지뢰로 인해 매년 상당한 사람들이 지뢰 피해를 당하고 있다. 전쟁 영화에서도 보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로 인해 작전의 속도가 느려지고 심지어 두려움으로 인해 작전 수행이 불가능해 지는 것도 보게 된다. 지뢰를 몇번 밟게 되면 지뢰를 밟은 사람들 뿐 아니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도 피해가 되고 두려움에 사로 잡혀 제대로 된 작전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우리도 삶을 살다보면 지뢰를 밟을 떄가 있다. 지뢰를 밟은 사람 옆에 있다가 함께 피해를 당하기도 한다. 그렇게 몇번 당하다 보면 주저하게 된다. 일이 잘 진행될 떄도 불안하다. 기뻐해야 하는데 걱정한다. 왜 우리는 잘 될 때도 불안해 할까?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을 보면 불안할 일이 하나도 없어야 한다. 해피 앤딩인 것 처럼 보인다. 그런데 우리 인생을 보면 우리는 여기가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성경을 통해, 자서전을 통해 인물을 공부하면 여러가지로 유익한 것들이 많다. 그 중에 하나가 인생 전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모두의 인생이 똑 같을 순 없다. 그러나 비슷 비슷하게 흘러가는 경향들이 있다. 그 사람들의 삶을 통해 우리도 우리 삶에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 어떻게 반응을 해야하는지를 배우게 된다. 그리고 미리 대비할 수 있게 된다.
오늘 본문도 본문 자체로 보면 참으로 평강하고 편안한 상태다. 야곱이 그 인생에 있어서 이렇게 가슴 졸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긴장 없는 상태에서 살아간 적이 있을까 할 정도다. 그런데 그 다음 장을 아는 우리는 이 상황이 얼마나 불안한 상황인지, 곳곳에 지뢰가 설치되어 있는지를 안다. 앞으로 얼마나 큰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안다. 마치 태풍 전에 고요함이라고 표현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 인생의 지뢰를 제거할 수 있는가?
1. 고통은 우리 인생의 필수다.
야곱은 험악한 인생을 살았다고 바로에게 말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있었던 사람인데 그 사람의 입에서 한평생 험악한 삶을 살았다는 고백이 나오다니, 참으로 무시무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야곱은 눈에 보이는 지뢰 (형 에서, 자기보다 형을 더 사랑하는 아버지 이삭, 자신을 괴롭히는 삼촌 라반, 경쟁하는 아내들)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은 지뢰(자녀 문제, 신앙 문제) 지대에서 살아간 사람이다. 때로 그 지뢰를 밟아 삶의 속도가 느려지고 방향이 틀어지는 것을 경험한 사람이다.
지뢰는 우리에게 고통을 준다. 인생의 지뢰는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것들이다. 고통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상실의 고통, 좌절의 고통, 배신의 고통, 배고픔의 고통, 사랑받지 못하는 고통, 이별의 고통, 비난의 고통, 무지의 고통, 인정 받지 못하는 고통, 질병의 고통, 정신적 고통, 육체적 고통, 비교에서 오는 고통, 외로움에서 오는 고통, 유한함에서 오는 고통, 잊혀지는 고통, 잠 못자는 고통, 자아가 부서지는 고통, 무시 당하는 고통, 용서 받지 못하는 고통, 죄로 인한 고통, 오해로 부터 오는 고통 등 우리는 수 많은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믿는 우리에게도 고통은 오는가? 당연히 온다. 우리에게도 고통이 있다. 어떤 고통은 분명이 눈 앞에 있는 고통인데 피할 수 없이 우리의 가는 길을 막고 있는 지뢰 밭일 때가 있다. 어떤 고통은 상상도 못했는데 터지는 그런 지뢰 밭이다. 갑자기 아프고, 갑자기 터지는 사건으로 인한 고통도 있고 언제 터질지 몰라 두려워 하는 고통도 있다.
결국 고통은 통제할 수 없는 삶과 상황으로 인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다. 고통을 통제할 수 있게 되면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그렇게 힘든 고통이 아니다.
야곱의 삶을 보면 참으로 재미있다. 그의 삶의 고통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일어나지 않는 일을 두려워하는데서 오는 고통이 있다.
우려했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로 인한 고통이었다. 에서와 라반이 그렇다. 에서로 부터 죽임을 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로 인해 가정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가야 했다. 그 기간이 20년이나 되었다.
라반 삼촌에게는 모든 것을 뺴앗겨 버릴 것 같은 두려움으로 야반 도주를 해야 했다. 추격전 끝에 잡혔다. 그러나 재산을 잃지 않았다. 그의 재산은 보존이 되었다. 그러나 그 기간은 야곱에게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다. 나중에 야곱이 삼촌에게 쏟아내는 말들을 보면 그렇다. 정말 그 말대로 일어날 수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막아 주셨다. 하나님의 개입을 우리는 섭리라 부른다.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평강할 수 있다. 두려움으로 부터 오는 고통을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느끼는 많은 고통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지 못하는 우리의 불신앙, 연약함에서 온다. 반면에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평안하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단 3:17-18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신앙의 인물들은 당당했다. 삶의 속도나 방향이 바뀌지 않았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기 떄문이다. 반면 야곱은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 아버지의 인도하심 보다는 자신이 삶의 중심이었다. 아직 그 정도의 신앙 수준이었다.
야곱의 신앙은 아직 공사 중이다. 야곱이 고통 가운데 있었던 것은 아직 그의 신앙이 공사 중이었기 떄문이다. 공사를 진행 중인 건축자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청사진을 보지 못했기 떄문이다. 청사진을 읽어내지 못했기 떄문이다.
하나님을 신로한다면 읽어나지도 않은 일로 고통 당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사람은 평강을 경험하며 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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